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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훈이의 이야기

O.K. 버스의 결투



22시가 다가오는 토요일의 밤 시각, 
우리나라라면 한창일 시간대이지만, 독일에서는 대충 교통을 이용하는 손님수가 이미 절반 이하로 줄어든 한산한 시간대..

장소는 Berlin이요 결투의 무대Osloer Str.에서 S-Bahn Buch행의 150번 버스.
나와 어머니, 중국인 아줌마와 그녀의 귀여운 아기, 그리고 중년의 독일인 남자가 관객으로 탑승해 있었다.

이윽고 오늘의 악역(Böse!) 맡으신 3인의 한량 탑승.
역시 만만찮은 포스를 풍기는 30대 후반, 40대 초반 정도의 보안관(Gut!) 역할의 젊은 운전기사는
이들을 처음부터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야리고' 있었다.

맨 뒷좌석에 포진한 3인조는, -내가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큰 소리로 떠들며 무언가 계속해서
'달그락' 거리는 시끄러운 소음을 내고 있었다(버스 시설물이라도 파손하고 있었던 걸까?).

우리의 보안관은 운전 중 거칠게 급정거를 한 차례 시도한다. 더군다나 역도 아닌 곳에서! o_O

보안관 : (마이크를 통해) 내릴 겁니까?
3인조 : (분위기 파악이 안 된 듯) 우린 계속 더 가야죠잉~ 쿠할할~
 
보안관, 말없이 다시 차를 몬다.
3인조는 아까보다 더 요동치며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Papierstr.(역이름까지 기억이 나는구랴!)에서 두번째 급정거! o_O

보안관 : 이 역이 너희들의 종착역이다(그는 이때부터 갑자기 반말을!!).

(그의 코멘트에 나는 순간, 차가 고장이 나서 우리모두 내려야 하는 건가? 하고 어리둥절하며 생각했는데
0.5초만에 사태파악이 됐다! 흥미진진한 결투에 희희낙락이 된 나와 달리, 뒤도 못 돌아보고 얼어버린 귀여운 울 엄마! +_+)

3인조 : (껄렁한 말투로) 우리 아직 한 정거장 더 가야 되겠는데~

보안관 : ...좋은 말 할 때 그냥 내려라.

(우리의 보안관은 여기서 아예 차 시동을 끄고 키를 뽑아버리기에 이른다!!)

3인조 : (약간 황당해하며 자기들끼리 의논 후)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려주쇼.
          (여기서 한 놈이 갑자기) 아 집에서 엄마가 기다리는데~ <= ㅋㅋ

보안관 : ...마지막 경고다. 내려라.

3인조 : (보안관을 흉내낸다) ...마지막 경고다. 내려라. 쿠할할할~~

보안관 : (비상벨을 누른다)

삐뽀~삐뽀~삐뽀~

(이거 정말 시끄러웠다)

3인조 : 아씨~ 두통 생기겠네. 아저씨~ 벨소리 좀 끄지?

보안관 : (연이어 말없이 운전대 옆의 번호판을 누른다)

(참고로 독일 버스는 운수조합/경찰측과 즉시로 연락이 가능한 통신장비가 구비되어 있다. 게다가 모두 메르세데스 벤츠~)

보안관 : 경찰이죠? 여기는 XOXOXO 버스이고 나는 누구인데 이러쿵 저러쿵 해서 와 주셨으면 합니다.

3인조 : (여기서부터 이 녀석들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다)

A : 야~ 쫄지마 쫄지마 우리 잘못한 거 없어~
B : 운전수 선생께서 친절하게 하차를 권유하신다면 내리겠지만 이렇게 강압적으로는 못 내리겠습니다! (ㅋㅋ 자세 돌변)
C :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야 있잖아 버스 안인데 이러쿵 저러쿵~

(보안관은 말도 하기 싫은지 대꾸도 안 한다..버스는 적막 그 자체..
 아무도 말 없이 흐르는 몇 분의 시간..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팽팽하다..
 보안관과 3인조는 서로 절대 양보하지 않아!!

 게다가 한밤에 컴컴한 버스 안에서 시동까지 꺼져 있다고 생각해 봐 ;ㅅ;)

(이윽고 멀리서 싸이렌 소리 들리고 경찰차가 무려 2대나 멀리서부터 달려온다! 역시 독일 경찰은 무서워..ㅎㄷㄷㄷ
 갑자기 3인조 녀석들, 보안관을 무섭게 야린 후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내린다)


보안관 : (다시 경찰과 연락을 취하며) 경찰이죠? 놈들이 내렸습니다...네...네...

(경찰차는 버스를 앞질러 3인조를 쫓아갔고 버스는 다시 시동을 켜고 유유히 출발했다)

ㅎ..보기에 따라서는 공권력 남용(?)으로 느껴질 지도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는 공공시설물에서 그 시설물의 안전 책임자가
전권을 휘두르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그들이 실제 버스에 위해를 가했느냐 아니냐는 둘째 문제. 판단은 기사의 몫이다.
더군다나 한 번의 경고를 귓등으로 들은 그들의 댓가는, 너무나 귀찮은 것이 되어 버렸으니 솔직히 자업자득.

Gut은 언제나 Böse를 물리친다. 독일에서라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구! ㅋㅋ

- 열악한 환경의 한국 버스기사들을 떠올리며 짧게 쓰다.

P.S. 그들이 버스를 내릴 때 어머니의 한 마디를 A Word A Day로 삼고자 한다.
      "뒤돌아 보지 마라. 따라올라~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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