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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훈이의 이야기

독일 이야기


솔직히 말해 나는 처음부터 독일이 '싫었다'.

투박한 독일어, 무식한 음식,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사람들(슬리퍼에 흰색 양말은 기본이다), 쌈질하는 거 같은 (폐부에서 전해오는) 시끄러운 음성, 게다가 '사랑스러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독일 여성들의 전투적 외모(보기에 따라서는 섹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고싶지 않아도) 보이는, 그네들의 장점에 대해 눈을 돌리기 시작하니,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이러한 점들은 정말 대단하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선 음악적으로는 전세계 어느 나라와 '맞짱'을 떠도 결코 밀리지 않을 이들의 귀신같은 합주력을 들고 싶다.
비단 '베를린 필하모니' 같은 일급의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간혹 Klassik Radio를 통해 들리는 이름없는 군소 합주단의 연주를 듣게
되더라도 (정말이지) 간혹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듣고 난 후에 끝에는 반드시 '햐~'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음악 이야기를 하게 되면 끝도 없이 이어가게 될 수 있으니 이만 중략하고, 다음의 사진 한장을 주목해 주기 바란다.


몇 주 전, 베를린 근교를 지나다 발견한 공사 현장의 사진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인부들의 출입을 위한 나무교량(?)에 장미나무가 있는데, 인부들은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사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곳에 둥그런 홈을 파서 나무를 살리며 나무통로를 설치해 두었다.
공사를 위해 손쉽게 장미를 제거해 버리고 통로를 설치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름다운 것을 지키려는, 혹은 생명/자연을 보존하려는
노력 같은 게 느껴져서 나는 한참이나 이 광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일에 있어 속도를 근간으로 한 '효율'이 우선한다.
때문에 '빨리빨리'라는 우리네 표현은 이러한 효율성을 대변한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중국에서는 '한국인처럼 참 빨리빨리 하시네요'라는 표현이 대단한 비아냥/욕이라고 한다)

하지만 독일은 모든 일에 있어 '안전성'이 우선이다.
독일인들이 느릿느릿 일하고, 1년에 6 주간의 (100% 유급) 휴가를 쓰고, 5시 칼퇴근 하면서도 한국인의 3배 소득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독일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연속 전세계 수출 1위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을 빨리하는 것을 혐오하고 일을 올바르게(원칙에 따라) 정확하게 하는 게 몸에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칙에 따라 한다는 건, 자기에게 불리하던 유리하던 100% 원칙에 따른다는 얘기다. 한국인들처럼 자신에게 유리할 때와 남을 공격할 때만 원칙을 따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언젠가 독일 구 동독 지역을 지나다 본 광경인데, 한 여름에 인부 2명이 헬멧을 쓰고 무릎을 꿇고 앉아 약간 경사진 곳에 깔고 있는 보도블럭에 대해 심각하고 진지하게 살펴보며 논의하고 있었다. 나도 무릎을 꿇고 어떻게 깔았나 살펴본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것이 정녕 인간이 깐 보도블럭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는데, 블럭 사이사이가 빈틈없이 깨끗하게 이어져 있고 편평도 또한 완벽하여 그저 놀라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한 번 시작하면 완벽하게 끝장을 내는 게 독일 시스템이다.

한국의 보도블럭 공사현장... 책임의식도 없고 대충대충, 울퉁불퉁, 몇 달 후 다시 파헤치고, 또 걷어내고 하수도 공사 조금하고 다시 광 케이블 공사하고...독일이 1차, 2차대전을 통해 세계를 감히(!) 집어삼키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그네들 눈에는 다른 나라 애들 하는 짓들이 그 정도로 시원치 않았기에, 한 번 '집어삼켜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독일에서 배워온 일본에게 지배당했던 우리네 과거사 역시 떠올랐고.

독일 사람들은 (오랜세월 동안 축적해 온) 인간적인 삶의 질에 대한 이해와 권리,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생활화 되어 있다. 한국의 '빨리 빨리'는 기계적인, 그리고 인간존중이 결여된 고쳐야 할 문화라 본다. 비지니스 사회에서 빨리 빨리 문화가 성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내 생각에는 한국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편법이라고 본다. 결국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그 댓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고, 후손들에게는 열악하고 주먹구구의 문화를 남겨줄 뿐이다.

아무렇게나 적다보니 '독일혐오'로 시작한 글이 '독일만세'로 귀결 되었는데, 하고픈 이야기는 대략 전달 되었으리라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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