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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주가 비교

크리스티앙 테츨라프 VS 토마스 체트마이어


세상에는 평범한 실력에 비해 유명세를 누리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뛰어난 실력과 내공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도 많이 있다. 확실히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전자와 후자의 갭은 더욱 더 커져가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와 비행시간으로만 10시간이 넘어가는 유럽 대륙의 숨겨진 명연주자들에 대해서까지 우리가 알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게다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은 전체로 보자면 그 땅덩이 역시 거대하다!). 필자 역시 유럽에서 크고 작은 연주회를 경험하며 익히 알려진 연주자들의 연주에서 느꼈던 익숙한 즐거움보다는 잘 알지 못했던 연주자들의 예상외의 호연에서 느꼈던 놀라움이 더욱 컸으며 또한 인상에 남았었다. 오늘 소개할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앙 테츨라프(Christian Tetzlaff)와 토마스 체트마이어(Thomas Zehetmair)는 국내 연주자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의 지명도도 있고 때문에 이들을 무명의 연주자들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허나 이들의 활동과 실력에 비한다면 국내의 인지도가 (여타 연주자들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며 때문에 필자는 비슷한 연배의 두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2010년 첫 번째 명연주가 비교 코너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 본 코너에서 프랑크 페터 침머만을 소개하며 안네-소피 무터와 함께 크리스티앙 테츨라프를 독일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꼽은 적이 있다. 때마침 테츨라프는 2월에 첫 내한하여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하루 만에 들려준다고 하니, 무척 기대되는 바이다. 1966년 4월 24일 함부르크 태생인 테츨라프는 6세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시작, 지금은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하이베어크 교수(Prof. Uwe-Martin Haiberg)를 사사하였고 신시네티 음악원에서 월터 레바인(Walter Levine)과 함께 공부하였다. 테츨라프의 연주 팔레트는 고전에서부터 시작하여 리게티나 진은숙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은 편인데, 지금까지 그라모폰지 크리틱스 초이스(바르토크), 황금 디아파종상(시벨리우스), 미뎀 어워드(베토벤) 등 주요 음반 상을 차례로 수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 마이클 틸슨-토마스, 데이빗 진만 등과 함께 베를린 필, 런던 심포니 등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도 협연하였다. 무엇보다도 실내악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특히 인상적인데,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라르스 포그트, 하인리히 쉬프 등을 실내악 파트너로 삼아 활동할 뿐만 아니라, 테츨라프 사중주단을 조직하여 현악 사중주 역시 활발히 연주하고 있으며 여동생인 첼리스트 탄야 테츨라프(Tanja Tetzlaff)와도 정기적으로 협연과 실내악 등을 통해 적극적인 이중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 크리스티앙 테츨라프)


1961년 11월 23일 잘츠부르크 태생의 토마스 체트마이어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수학하였으며(그의 아버지인 헬무트 체트마이어 박사가 교수로 있었던 곳이다), 나탄 밀스타인과 막스 로스탈을 사사하였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마찬가지로 체트마이어는 동시대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오랫동안 성공적인 커리어를 지녀왔고 비평가와 관객들은 그에 열광하고 있다. 그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고 있는데,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유럽 채임버, 베를린 필, 빈 필,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보스턴 심포니, 필라델피아, 크리블랜드 등과 정기적으로 협연하면서, 다니엘 바렌보임, 허버트 블롬슈테트, 프란스 브뤼헨, 도흐나니, 에셴바흐, 가디너, 아르농쿠르, 홀리거, 매커라스, 노링턴, 래틀, 살로넨 등과 호흡을 맞춰왔다. 체트마이어는 거의 모든 바이올린 레퍼토리를 녹음해왔다. 1997년에 그는 치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사이먼 래틀 지휘, 버밍엄 심포니)을 녹음하여 그라모폰 상을 받았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녹음(프란스 브뤼헨 지휘, 18세기 오케스트라)은 이 곡에 대한 중요한 해석으로 평가받는다. 스탠다드 레퍼토리 외에 그는 현대 음악에 많은 열정을 쏟고 있어서, 최근에도 하인츠 홀리거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임스 딜롱과 한스 위르겐 폰 보제의 협주곡 등을 초연하였다. 체트마이어는 1994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현악 사중주단을 조직하여 ‘체트마이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전곡을 암보로 연주하며 매년마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하나씩 개척하는 학구적인 행보로 언론과 청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CM 레이블로 음반을 발매하고 있으며 하르트만, 바르토크, 슈만 등을 녹음하였다. 슈만 현악 사중주는 "올해의 디아파종상"과 그라모폰 "올해의 음반", 그리고 벨기에 비평가 상을 수상하였다. 체트마이어는 바이올리니스트, 앙상블리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지휘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2001년 11월 노던 신포니아(Northern Sinfonia)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스코티쉬 채임버, 빈 채임버, 잘츠부르크 카메라타 아카데미카, 파리 오케스트라 앙상블, 그리고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였으며, 18세기 바로크 오케스트라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바이마르 음악원으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역시 체트마이어 사중주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Ruth Killius(루트 킬리우스)와 결혼하였다.
 

 


(사진 : 토마스 체트마이어)

무엇보다도 테츨라프와 체트마이어 공히 노력하는 연주자들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테츨라프는 바쁜 협연 스케줄의 와중에도 바흐 무반주 전곡이나 바르토크 무반주 같은 녹록치 않은 레퍼토리를 꾸준히 리사이틀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으며, 체트마이어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현악 사중주단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최근에는 보다 많은 시간을 지휘자로서 보내고 있음에도 작년 가을, 만하임에서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연주하는 등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활동 역시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콘서트 아티스트들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준비된 레퍼토리 사이클 안에 새로운 곡들을 익혀 틈틈이 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때문에 이 두 연주자들은 ‘정말 부지런한’ 연주자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테츨라프를 처음 들어본 것은 드보르작 바이올린 협주곡과 랄로 스페인 교향곡이 커플링 된 음반을 통해서였다. 특별히 번뜩이는 느낌은 없었지만 고전적이고 안정된 텍스트 리딩이 인상적이었는데, 이후 그를 ‘제대로’ 다시 들어본 것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통해서였다. 첫 시작부터 상당히 빠른 템포에 놀랐지만 마치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그의 모션과 그리고 다소 ‘울렁거린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프레이징의 표현에 있어 굴곡이 심한 연주를 펼쳤었다. 확실히 이 날의 연주는 잘된 것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고, 테츨라프를 통해 유명세를 얻게 된 ‘그라이너’ 바이올린 역시 큰 무대에서 처음 들어본 날이었는데, 필자가 10번째 정도의 열에 앉아 있었음에도 그 소리의 전달력에 있어 의문이 느껴졌다.

체트마이어 역시 음반을 통해 처음 접해 보았는데, 현재 하노버 음대의 교수로 있는 울프 슈나이더(Ulf Schneider)가 제 2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체트마이어 사중주단을 통해서였다. 극도의 정갈함과 클래식의 정점에 이른 듯한 세련된 취향에 세삼 놀랐던 기억이 나는데, 이후 들어본 체트마이어가 연주한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 전곡 녹음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광휘에 휩싸인 듯한 절정에 다다른 표현력과 한계를 느낄 수 없는 기술적인 능력이 결합된 독특한 흥취는, 이 곡의 많은 연주들 중에서도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음반으로 다가왔다. 체트마이어가 독일계임을 감안하면 프랑스적 취향이 깊이 투사된 이자이(벨기에 연주자/작곡가)의 작품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게(프랑크 페터 침머만의 ‘건강한’ 연주와 비교해 보라) 더더욱 놀랍게 느껴졌다.

두 연주자 공히 손목 비브라토를 주로 사용한다. 다만 테츨라프의 비브라토가 좀 더 남성적이고 브람스다운 느낌이라면, 체트마이어의 그것은 좀 더 섬세하고 여성적인 색채가 강하다. 아마도 악기의 서로 다른 부응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테츨라프 역시 오리지널 스트라드를 사용한 시기가 있었지만 음악계에도 널리 알려졌다시피 2000년대 초부터 독일 본(Bonn)의 제작자, 스테판-페터 그라이너(Stefan-Peter Greiner)를 사용하며 그라이너 악기를 일약 유명하게 만들었다. 필자 역시 유럽의 명망 있는 현대 제작자들의 악기를 많이 보고 연주해 보았으며 때문에 그라이너 악기의 외관이나 사운드가 ‘새 악기’로서 훌륭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새 악기로서’이다. 때문에 콘서트홀에서 구석구석까지 소리를 전달해야만 하는 솔리스트 악기로서의 숙명과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과연 그것이 이탈리아 올드 명기와 견줄만한 것이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테츨라프의 뒤를 이어 베를린 음대의 안쳬 바이타스(Antje Weithaas)나 하노버 음대의 엘리자베스 쿠퍼라트(Elisabeth Kufferath) 같은 교수들이 그라이너를 구입하고 또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라이너에게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과르네리 콘셉트를 기반으로 스테판 페터 그라이너와 오리지널 도미니크 페카트 보우, 그리고 토마스틱 비전 줄을 사용하는 테츨라프에 반해, 체트마이어의 시계는 철저히 ‘그 옛날’로 맞추어져 있다. 체트마이어는 1730년산 스트라디바리를 사용하며 4줄 공히 거트현으로 연주한다. 확실히 체트마이어의 소리는 테츨라프에 비해 좀 더 ‘fine'한 느낌이 강하며 보다 고전적이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두 연주자들의 오른손 주법은 손목과 손가락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보기에 비슷하나 그 내용은 전혀 딴 판이다. 테츨라프는 곡의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활 방향을 제시하며 전반적으로 압착되고 강렬한 소리를 즐기는 편이나 체트마이어는 악기를 좀 더 자유롭게 노래하도록 만들고 압력을 줄인 대신 좀 더 공기를 머금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보기에도 체트마이어의 주법이 좀 더 적극적인 팔목과 손가락의 사용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체트마이어는 지난 번 명연주가 비교에서 언급했던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나 야니네 얀센의 주법과 마찬가지로 보다 적극적으로 몸의 안쪽(뒤쪽)으로 활을 보내는 주법을 사용하고 있다.

테츨라프는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구조적인 조망이나 솔리스틱한 표현력에 보다 능한 연주를 펼친다. 하지만 안정된 느낌은 다소 덜한 편이며, 때문에 이것이 실연에서 기복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에 반해 체트마이어는 숲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뭇잎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청자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지휘와 현악사중주 활동을 통해 얻어진 전체적인 구조에 대한 통찰력 또한 겸비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후련함’을 원하면 체트마이어에게서 미흡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고전음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궁극적 경험을 구하는 이에게라면 체트마이어의 연주는 거의 보증수표에 가깝다.

필자는 이번에 소개하는 테츨라프와 체트마이어 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에 대해,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곡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과감히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어떤 음악이건 무한히 깊은 감정적 충격으로 배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그런 충격이 언제나 당신에게 찾아오기 위해서는, 박식한 역사가보다는 둔한 하인의 자질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듣는 것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기쁨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음악컬럼니스트 김광훈)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중 2 악장 (바이올린 : 토마스 체트마이어,
   피아노 : 발레리 아파나시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