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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주가 비교

율리안 라흘린 VS 바딤 레핀


 예술세계에 있어 ‘비교’라는 행위는 사실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분초를 다투는 기록의 세계인 스포츠와 달리, 음악 예술이라는 것은 저마다의 개성을 바탕으로 작품을 충실히 해석해 내어 청중들의 교감을 이끌어 내는, 지극히 정서적이고도 내면적인 세계인 까닭에 비교를 통해 호불호(好不好)를 논한다는 것은, 사실 자신의 기호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연주라는 것도 듣기에 따라서는 별다른 악상의 변화가 없는, 지루하고 예쁘기만 한 연주라 폄하할 수 있는가 하면, 거칠고 투박한 연주도 듣는 이에 따라서는 남성적이고 호소력 있는 연주라고 얼마든지 추켜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라는 행위를 통해 연주자들 저마다의 개성과 스타일을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장점이라 하겠다. 이번 명연주가 비교 코너에서 소개할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이제 삼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율리안 라흘린(Julian Rachlin, 1974년 12월 8일생)과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바딤 레핀(Vadim Repin, 1971년 8월 31일생)이다. 30대의 바이올리니스트 중에는 물론 이들 외에도 ‘청명하고도 낭랑한 소리의 소유자’인 길 샤함이나 ‘거침없는 야생마와도 같은 기질의 소유자’ 야니네 얀센(그녀는 실제 78년생 말띠이기도 하다), 혹은 ‘능청스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막심 벤게로프(요즘은 지휘에 더욱 치중하는 모습이다)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시대의 30대 바이올리니스트들이다.

 


(사진 : Vadim Repin)

 리투아니아 태생의 율리안 라흘린(독일어 이름이므로 ‘라츨린’이 아니라 ‘라흘린’이라 읽어줘야 맞다)은 사실 그가 4살이 되던 시절,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갔기에 곧잘 오스트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린다. 하지만 성인이 된 라흘린은 곧잘 구소련(현 리투아니아를 아우르는) 출신의 명망 있는 연주자들과 앙상블을 즐기곤 하는데, 이런 라흘린의 모습에서 역시 그의 뿌리는 리투아니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빈 콘서바토리에 입학한 라흘린은 명교수 보리스 쿠쉬니어(Boris Kushnir)를 사사하게 된다(1997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한 니콜라이 츠나이더 역시 보리스 쿠쉬니어를 사사했다). 하지만 필자의 사견으로, 활을 사용하는 보우 암(Bow Arm)에 대한 라흘린의 남다른 이해는, 역시 그가 따로 개인 레슨을 받았던 핀커스 주커만의 영향이 지대하였다는 생각이다. 라흘린은 1998년에 유로비전 콘테스트에서 1위에 입상함으로써 두각을 나타냈고 같은 해에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베를린 페스티발에서 데뷔,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 아래 빈 필과 최연소 협연기록을 남김으로써 화려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전 부터는 그의 이름을 딴 ‘Julian Rachlin & Friends’라는 음악 페스티벌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사진 : Julian Rachlin)

 바딤 레핀은 서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 출신으로 러시아 태생의 연주자다. ‘구소련’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한다면, 레핀 역시 라흘린과 같은 뿌리인 셈이다. 라흘린에게 소비에트의 바이올린 전통을 전수해 준 보리스 쿠쉬니어라는 명교수가 있었다면, 레핀에게는 저 유명한 자카르 브론이 있었다. 막심 벤게로프의 스승으로도 유명하지만, 국제 콩쿠르에서 백 명도 넘는 상위 입상자를 낸 브론 사단의 명성은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줄로 믿는다. 레핀은 당시 러시아가 기대하는 신동이기도 했지만 브론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덕택에 불과 17세의 나이로 최연소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가 된다. 이후 레핀은 쿠르트 마주어, 사이먼 래틀 경, 에사-페카 살로넨, 리카르도 샤이,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과 같은 당대의 지휘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본격적인 솔리스트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이제 녹음을 살펴보자. 사실 라흘린의 녹음은 그의 연주 이력을 감안했을 때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우선 놀란다. 많이들 아시는 Sony 레이블 시절의 생상, 비에니압스키, 시벨리우스와 차이콥스키 녹음 이후 라흘린은 Sony와 결별하고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J.R. 레이블에서 첫 소품집을 낸다. 오랜 실내악 파트너인 이타마르 골란과 함께 한 이 음반은, 필자의 사견으로 그의 음반 중에서도 ‘Must buy’ 아이템이라 생각되지만 아쉽게도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후 Koch Schwann에서 한 장,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한 장, 워너에서 두 장의 음반을 발매하며 음반사를 전전하더니, 최근에는 ONYX Classics에서 쇼스타코비치 실내악 음반을 내놓았다. 다소 두서없는 그의 음반 레퍼토리와 발매 방식과 달리, 실연 무대에서의 라흘린은 음반화하지 않은 많은 대곡들과 현대 곡들을 정말이지 ‘종횡무진’ 연주하며 전 세계 콘서트홀을 누비고 있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음반보다는 실연이 더 기꺼운 모양이다. 어쨌거나 음반 상의 라흘린은 감상자들 입장에서 꽤나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라흘린이 ‘구조’를 극명히 드러내는 연주자이기보다 ‘감각’에 충실한 연주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바이올린이란 악기로 이제껏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던 텍스트 리딩과 악기 특유의 매력을 라흘린 만큼 감칠 나게 표현해 주는 연주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가 E선에서 속삭이는 소리(혹은 울부짖는 소리)와 G선에서 들려주는 깊이 있는 음색의 대비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하지만 바꾸어 말한다면, 라흘린의 이런 매력은 음반보다는 실연에서, 그리고 구조적 통찰력이 필요한 소나타나 큰 협주곡에서보다는 소품이나 화려한 쇼피스에서 더욱 빛이 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그의 연주에서 신선한 경험은 거의 보증수표에 가깝지만, 궁극적인 음악에의 이해와 무엇보다도 통찰력 있는 해석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얻기에는 미흡한 느낌이다.

 레핀은 라흘린에 비한다면 우선 충실한 디스코그래피가 돋보인다. 러시아 신동 시절, 멜로디아에서 첫 음반을 발매한 이후 에라토 레이블에서 10여장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주요 소나타들을 차례로 선보였다(그의 녹음들 중 루브르 리사이틀 음반에서는 저 유명한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로비 라카토쉬와 함께 깜짝 이중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이후 연주자들의 꿈의 레이블인 도이체 그라모폰으로 이적, 베토벤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차례로 선보이며 착실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레핀은 라흘린에 비해 정확히 반대 이미지의 연주자로, 감각보다는 곡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낼 줄 아는 타입이다. 때문에 레핀의 경우 대곡 연주나 소나타 연주가 무척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실연에서 들려주는 레핀의 음색이나 그의 덩치에서 기대하게 되는 사운드에 비한다면, 적어도 에라토 시절의 녹음들은 무언가 선이 가늘고 조심스러운 느낌이 강하다(당시 사용하던 악기-스트라디-의 탓일 수도 있겠다). 레핀은 바이올린을 통해 라흘린이 즐기는 극단의 대비나, 혹은 벤게로프가 들려주는 능청스러움에 집중하기보다는 충실한 텍스트에의 이해와 고전적인 해석에 주력한 연주를 들려준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악기와 활, 그리고 줄에 대해 언급하자면, 우선 라흘린은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 국립 은행의 대여로 1741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ex Carrodus'를 사용하고 있다. 과르네리 델 제수 중에서도 최고 명품으로 인정받는 이 악기는, 확실히 라흘린의 마구 긁어내는 연주나 혹은 섬세한 피아니시모의 표현에도 모두 부응하는 명기다. 흥미롭게도 라흘린은 여타 국제적 솔리스트와 달리 독일 드레스덴의 활 제작자, 다니엘 슈미트(Daniel Schmidt)의 활을 사용한다. 그의 아버지인 카를-한스(Karl-Hans) 슈미트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활 제작자이고 두 아들인 다니엘과 요헨 역시 명망 있는 제작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세계적 솔리스트가 프랑스 올드 활이 아닌 독일 모던 활을 주력 활로 사용한다는 점은 분명 흥미로운 점이다. 슈미트 활은 대체로 가운데가 굉장히 무른 편이며 때문에 처음 사용해보는 연주자는 당황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부드러움으로 인해 라흘린은 보다 팔의 무게와 압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연주를 펼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줄의 선택에 있어서도 라흘린은 특이한 행보를 이어간다. G선과 D선은 토니카를 애용하며, A선은 야가(그가 곧잘 연주하는 비올라의 영향으로 보이는), 그리고 E선은 카플란 Golden Spiral을 사용한다.

 엑스 캐로듀 하나로 밀고나간 라흘린에 비해 레핀이 거쳐 간 악기는 다채롭다. 1720년산 스트라디바리 ‘ex Wieniawski’와 1708년산 ‘Ruby’를 지나 2002년부터 지금까지 과르네리 델 제수 1736년산 ‘von Szerdahely’를 사용하고 있다. 레핀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주 스타일은 스트라드에 비해 델 제수가 더 맞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감상하는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소리내기’는 여전히 스트라드의 그것에 더 걸맞다는 느낌이다. 레핀의 고전적 취향은 그가 애용한다는 니콜라우스 키텔(Nicolaus Kittel)과 니콜라스 말린(Nicolas Maline) 활과도 좋은 짝을 이룬다. 줄에 관해서는 독특한 취향을 자랑하는 라흘린에 비해 레핀은 풀세트의 에바 피라치를 애용하는데, 이 줄이 가진 약점(지나친 고음역 위주의 텐션 설정에서 오는 베이스의 부재와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배음 등으로 인해 레핀 뿐 아니라, 막심 벤게로프, 조슈아 벨 등 당대의 솔리스트들이 풀세트의 에바 피라치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라흘린이 연주할 때, 그의 왼손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엄지손가락을 안쪽으로 당겨서 연주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라흘린의 엄지손가락 포지션은 왼손 2번 손가락과 거의 평행을 이룰 정도로 극단적인 곳에 위치해 있다. 암 비브라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만 고음의 E선 등에서 들려주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적인 사운드는 라흘린만의 독특한 비브라토에서 기인한다. 라흘린은 비단 실내악이나 리사이틀 무대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도 정기적으로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다. 혹자(주로 비올리스트)는 이러한 스위치히터 타입에 대해 대단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확실히 비올리스트 입장에서 보자면 소리를 내는 방법에 있어 미묘한 차이(사실은 굉장히 큰)가 있는 ‘비올라’라는 악기를, 마치 바이올린 연주하듯이 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순수 감상자 입장에서 비올라를 연주하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나, 혹은 핀커스 주커만을 접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라흘린의 이러한 비올라에의 이해는 그의 바이올린 연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라흘린의 독특한 아티큘레이션과 악구 처리는 상당 부분 그의 활 쓰기에서 기인한다. 압착된 보잉과 섬세한 활쓰기의 극적인 장면전환은 라흘린 만의 전매특허라 할 만 하다. 바딤 레핀 역시 왼손 엄지를 당기는 편이지만 그 정도가 라흘린 만큼 과하지는 않다. 손목 비브라토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팔 비브라토를 간헐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라흘린과는 다른 면모다. 그리고 어깨받침을 사용하는 라흘린(오랜 시간 Bon Musica를 사용했으나 최근 Kun Bravo로 바꾸었다)에 비해 어깨받침 ‘없이’ 연주하는 레핀은, 적어도 악기의 고정 상태와 남자다운 당당한 포즈에 있어서는 라흘린에 비해 나은 인상을 준다(흥미롭게도 벤게로프는 같은 자카르 브론 문하생임에도 어깨받침을 사용하고 있다). 라흘린은 악상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운 악기 자세를 취하지만 레핀은 늘 한결같은 포지션을 유지한다. 또한 곡의 분위기에 따라 활 밑에서도 활털의 전면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라흘린에 비해 레핀은 활의 측면을 주로 사용하는 고전적인 방법의 주법을 견지하고 있다. 라흘린의 소리가 변화무쌍하고 대신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비록 다양한 표정변화에의 아쉬움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관된 소리내기와 안정된 느낌은 레핀의 연주에서 보다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라흘린의 많은 실연무대를 접해 보았는데, 그 중에 특히 생상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이 기억에 남는다. 이미 오래전 Sony 레이블에서 녹음한 탓도 있겠지만, 마치 따로 앰프를 장착한 듯 느껴지는 바이올린 사운드에 힘입어, 라흘린은 곡을 쥐락펴락 하며 카리스마 넘치게 연주하면서 군데군데 자신만의 어법을 아로새기며 감각적으로 연주해 냈다. 라흘린의 경우, 그만의 소위 ‘핑거 프린트’가 너무 강한 나머지, 간혹 다소 ‘변칙적이다’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표현의 공간이 보다 넉넉한 생상과 같은 낭만 협주곡에서는 이러한 면모들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잘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바딤 레핀의 경우, 비오는 야외무대에서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멘델스존 협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게 뻔할 수밖에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잘해야 본전’인 곡일 수도 있는데, 필자는 이 날 그토록 자주 들었던 이 곡을 마치 처음 듣는 듯한 놀라운 경험마저 할 수 있었다. 전곡을 꿰뚫는 거시적 관점의 전통적 해석에 맞물린 레핀만의 독자성과 거장다운 음색은, 곧잘 비교되는(혹자는 더 낫다고 이야기하는) 벤게로프를, 이제는 상회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확신하게 될 정도로 실로 인상 깊은 연주였다.

 라흘린은 곧잘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 3번 발라드를, 그리고 레핀은 파가니니 베니스 사육제 변주곡을 앙코르 피스로 즐겨 연주하곤 한다. 변화무쌍하고 감각적인 이자이와, 화려하면서도 오소독스한 매력의 파가니니 곡은, 어쩌면 두 연주자의 성향과 스타일을 가장 잘, 그리고 극명하게 대변해 주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음악 컬럼니스트 김광훈)


* 음악은 라흘린 연주의 비에니압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주빈 메타 지휘,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