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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주가 비교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VS 프랑크 페터 침머만


 파가니니나 에른스트 류의 전형적인 ‘기교형’의 곡에서 인상을 남기는 것과, 선 굵은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상당히 다른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곡의 구조를 예리하게 드러내야 하는 소나타에서 빛을 발하는 것과(소나타 연주는 현악기에 대한 ‘감각’보다는 ‘머리’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화려한 쇼피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 또한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확실히 과거의 대가들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연주자들 중에서도 모든 스타일에 능숙히 대처하는 연주자는 극히 드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초절기교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대개 깊이 있는 사운드와 철학적인 해석이 부족하기 십상이고, 반대로 사색적이고도 선 굵은 연주를 펼치는 연주자들에게서는 바이올린 특유의 날렵하고 기민한 느낌이 덜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드물지만’ 이런 모든 스타일의 곡들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를 들려주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존재한다. 지난 호에도 소개한 바 있는 힐러리 한(Hilary Hahn) 또한 이런 타입의 연주자 중 하나다. 에른스트의 무반주나 일련의 파가니니 변주곡들, 그리고 바흐 무반주곡에서부터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 협주곡에 이르기까지 힐러리 한은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를 들려준다(때론 라이브 무대에서 지나친 감정 절제와 느지막한 템포의 설정이 지루함을 주기도 하지만). 또 토마스 체트마이어(Thomas Zehetmair)는 어떠한가? 체트마이어 사중주단에서 들려주는 최고 수준에 다다른 앙상블리스트로서의 실력, 소나타에서 극명히 드러나는 구조적 통찰력, 뿐만 아니라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전곡 녹음) 등에서 보이는 광휘(光輝)에 휩싸인 듯한 절정의 표현력과 화려한 명인기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그는 오늘 10월 22일 독일 만하임에서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연주한다). 

(사진 : Frank Peter Zimmermann)

 이번 명연주가 비교에서 소개할 연주자는 레오니다스 카바코스(Leonidas Kavakos)와 프랑크 페터 침머만(Frank Peter Zimmermann)이다. 사실 침머만의 경우, 그의 내한 공연과 음반들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편이나 카바코스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덜한 편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현존하는 단 한 명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를 꼽으라면(기돈 크레머 이상의 연배들은 논외로 하기로 하자), 주저 없이 카바코스를 꼽고 싶다. 1967년 10월 30일 생의 카바코스는 그의 나이 불과 18세에 시벨리우스와 인디아나 폴리스 콩쿠르를 석권했고, 21세에 나움버그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카바코스를 ‘정답만 써 내는’ 지루한 콩쿠르 타입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랜 시간 연구하여 고안한 자신만의 독창적 주법을 바탕으로 연주하는 카바코스는, 이미 10대 중반에 파가니니의 God save the queen 바리에이션 류나 파가니니 카프리스, 이자이와 에른스트 무반주 등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들려주고 있다(유튜브를 통해 그의 다양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카바코스에게서 느끼는 놀라움 중 하나는, 그가 클래식 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척박한’ 땅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 태생이라는 사실이다. 실제 그리스 최고 오케스트라라고 하는 ‘그리스 내셔널 오케스트라’조차도 그 수준이 평이하다는 소리를 듣는 판국에 카바코스와 같은 인물의 등장은, 그야말로 하나의 ‘현상’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누군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던 음악계의 성공 삼 원칙(유태인이거나 동성애자거나 그도 아니면 마피아와 결탁하거나) 중 그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 카바코스의 약진은 ‘실력’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빈 필이나 베를린 필이 앞 다투어 그를 초빙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의 음악세계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생각된다.


(사진 : Leonidas Kavakos)

 
 카바코스에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침머만에 비해 지명도가 적기 때문이나 그렇다고 침머만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독어권 나라들에는 뛰어난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는 즐비한 반면, 세계적 솔리스트는 상대적으로 적은 느낌인 것이 사실이다. 오직 안네-소피 무터가 그 시작인 동시에 끝인 듯한 느낌이었으나 프랑크-페터 침머만의 등장으로 무터의 독주체제는 양강 체제, 혹은 삼강 체제(크리스티앙 테츨라프를 고려한다면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침머만과 테츨라프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로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65년 2월 27일 생의 프랑크 페터 침머만의 연주는, 그보다 2살 아래인 카바코스의 연주와 ‘격정적이고 직접적’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 사운드와 독일인의 (음악적) 감정 표현에 대해 필자가 갖고 있는 다소간의 ‘고정관념’에 비추어 보면 침머만의 연주 스타일은 사실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파가니니 바리에이션이나 카프리스 등에서 들려주는 서늘한 초절기교, 뿐만 아니라 필자가 아직까지도 최고의 모차르트 3번 라이브 연주로 꼽고 있는 베를린 필과의 협연(혹자는 지나치게 빠른 손목 비브라토와 두터운 음색을 흠으로 꼽지만 그는 이 연주에서 음악에의 완전한 몰입을 보여주며 또한 들려주고 있다) 등을 보고 있노라면 타고난 재능에 더해진 이 연주자의 무서운 노력과 몰입, 그리고 헌신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 전화 인터뷰에서 침머만이 필자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착 펄만이 설령 도로시 딜레이에게 배우지 않았더라도 그는 대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마찬가지의 현상(?)을 카바코스나 침머만에게서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특출한 스승이 없었으나 자수성가한 카바코스의 경우나, 굳이 발레리 그라도프가 아니었어도 침머만은, 오늘날의 침머만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둘 다 스트라디바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사운드는 참으로 다르다(카바코스는 1692년산 ‘Falmouth’ 스트라드와 1782년산 지오바니 바티스타 과다니니를 사용하고 있고, 침머만은 과거에 1706년산 ‘ex-Dragonetti’ 스트라드를, 현재는 1711년산 ‘ex-Kreisler’ 스트라드를 사용 중에 있다). 카바코스는 직접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이기까지 한, 다소 날카롭고 서늘하면서도 거침없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직접적이고 감정을 우회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침머만의 소리 역시 남성적이며 (앞서 언급했다시피) 카바코스와 유사한 점이 있으나, 침머만의 소리는 좀 더 따뜻하고 둥근 느낌이며 자신이 존경한다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영향 또한 엿볼 수 있다(사용하는 활의 차이나 줄의 차이일 수도 있겠는데, 카바코스의 경우 풀세트의 Thomastik Vision Titanium Solo를 쓴다. 한국에서 에바 피라치를 거의 맹신(?)하는 것과 달리, 유럽에서는 도미넌트를 만드는 토마스틱 사의 새로운 라인업인 Vision Series를 -솔리스트나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를 가리지 않고- 즐겨 사용한다. 뉴욕 필의 오랜 악장이었던 글렌 딕터로우는 Vision Solo(어둡고 풍부한 음색이 특징이다)를 사용하며, 테츨라프는 레귤러 Vision을 애용한다).

(연주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현대 악기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유럽의 명망 있는 제작자들의 악기를 구입하여 무대에서 가끔 연주하곤 하는 카바코스와 달리, ‘마법’은 오직 올드 현악기에만 있으며 때문에 새 악기에는 큰 관심이 없노라고 말하는 침머만의 태도는 분명 상반된 것이다.

 격정적인 비브라토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은 둘 다 비슷하다. 하지만 왼손의 움직임은 판이하게 다른데, 아무리 바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의 에밀 소레 카덴차를 연주하고 있다 하더라도 카바코스의 손은 지판에서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별로 떨어지지도 않고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보여준다. 지판 위를 스물스물 움직이는 폼이 마치 밀슈타인을 보는 듯 하다. 이에 비해 침머만의 손은 매우 활동적이다. 지판에의 정확한 터치감을 중시하고 늘 곧게 뻗은 상태로 유지하는 특이한 형태의 4번 손가락은 침머만만의 개성이라 할 만하다. 운지가 매우 활동적이고 거침없는 것이 마치 하이페츠의 그것과 흡사하다.

 곡에 대한 해석은 두 연주자 모두 치열한 동시에 스타일과 시대에 맞는 주법으로 연주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카바코스가 연주하는 바흐와 파가니니, 그리고 이자이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와 브람스 혹은 바르톡에서 들려주는 에스프리와 스타일은 상반된 것이다. (적어도) 카바코스보다는 좀 더 리사이틀리스트로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침머만은 곡에 따른 디테일에 (광적인) 집착마저 느껴질 정도로 학구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이나, 그가 EMI 산하에서 음반을 내던 시절, 음반 판매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후문인데, 침머만과 같은 실력자의 연주가 팔리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연주가 팔려야 하는가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기억이 있다.

 이 둘을 매치시켜 비교해 볼 만한 많은 음반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모차르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침머만은 앞서 말했듯 남성적 활력과 대담한 접근법으로 이 곡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그는 하이 포지션(D선 등)에서 연주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최근의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원전 스타일에의 집착’ 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연주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어떤 의미에서 침머만은 고전 음악의 각종 금기들에서 자유로운 느낌이며 때문에 더 호소력이 있는 연주를 들려줄 수 있다 하겠다). 반면 카바코스는 (적어도) 모차르트에 관한 한, 철저한 원전주의에 입각한 연주를 펼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체트마이어와 마찬가지로 지휘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그답게, 일개 독주자로서의 명인기를 과시하는 것보다, 때로는 전체 구조의 한 주춧돌로서의 역할에 주력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모차르트 스타일에 걸맞은 빠르고 좁은 비브라토, 하위 포지션의 적극적 이용, 빈 풍의 리듬 혹은 만하임 활 쓰기에 대한 예리한 고찰은 설혹 귀에는 즐겁지 않을지라도 이것이 대단히 스타일리쉬한 연주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활쓰기에 관한 한 이 둘은 극명히 다른,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카바코스는 도드라지게 오른손 손목이 올라간(팔꿈치를 내린) 주법에 더하여 활을 쥐고 있는 손가락의 위치들 또한 평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토마스 체트마이어나 야니네 얀센 등과 마찬가지로 아래 반 활에서 유독 몸 뒤쪽으로 보잉 하는 것을 중시한 주법을 펼치고 있다(실제 많은 현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활을 밖으로 쓰는 걸 중시한 나머지 프로그 시작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연주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도 잘만 연주하는 길 샤함 등의 플레잉을 보았을 때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에 반해 침머만의 주법은 (적어도 보기에는) 카바코스의 그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활을 살짝 감아쥔 채로 프로그에서 활을 바꿀 때마다 손가락 역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 줄마다 팔꿈치의 높이도 올드 러시안 스쿨처럼 지나치게 높거나 혹은 루돌프 콜만(Rudolf Koleman)처럼 지나치게 낮지도 않다(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콜만이 러시안 스쿨의 하이페츠를 사사했다는 점은 -그의 주법을 감안했을 때- 아이러니다. 자신만의 주법을 찾아내 젊은 나이에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의 악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솔리스트 및 교수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역시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독자 여러분들에게는 다소 진부한 비교가 되었을지 모르나, 상반된 스타일의 고난도 곡들을 무대 위에서 최고 수준으로 들려주는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프랑크-페터 침머만 같은 연주자들은 분명 흔치 않다는 생각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황금세대는 저물었노라고 오래전 누군가 선언 했다지만, 이들과 함께라면 새로운 ‘Golden Era'도 헛된 꿈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며 이번 명연주가 비교를 마친다.   (음악컬럼니스트 김광훈)


* 음악은 카바코스가 연주하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초판본(Original 1903/04 Version)'의 2악장
  (오스모 밴스캐 지휘,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